이슬람교는 창시자 마호멧이 10년 포교해도 100명밖에 신도가 없었다. 이것이 이슬람교의 실체이다. 하지만 마호멧이 칼로 전쟁을 시작하면서 교세가 확장되었고 마호멧의 사후 계속되는 전쟁으로 이슬람교는 확대되었다. 이것을 어찌 서국적 묘사라고 하겠는가? 이슬람교의 실제 교인은 100명, 칼로 협박해서 10억으로 크게 증가한 것이다.
호멧은 메카에서 포교를 시작 한지 3년 만에 40명, 10년 만에 겨우 100명의 신도밖에 획득하지 못하였다.
마호멧은 교단을 이끌고 여러 차례 메카군과 싸워 630 년 1월에는 마침내 메카를 정복하고 카바 신전에 들어가 이것을 알라의 신전으로 바꾸어 놓았다. 얼마후 아라비아의 태반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마호멧은 632년 6월 메디나의 자택에서 병사하였다.
마호멧의 사후, 교단은 신도의 장로들 중에서 교통(敎統)의 후계자인 칼리프를 선출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진출을 개시하여 633년에서 644년까지 시리아, 이라크, 북부메소포타이아, 아르메니아, 이란, 이집트 등을 정복하여 여러 곳에 기지도시(基地都市)를 건설하였다.
그 후에도 정복사업은 계속되어 우마이야조 시대에는 서쪽은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 까지, 다시 711년부터는 이베리아(스페인) 반도에 침입하였고, 동쪽은 중앙아시아와 인도북서부까지 그 지배 하에 두었다. 동방에서는 751년 여름 탈라스강의 싸움에서 중국의 당나라 군을 괴멸시키고 중앙 아시아의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투르크계 즈나왕조의 마흐무드왕은 자주 인도에 침입하여 이 지방의 이슬람교가 확고한 기반에 놓여도록 하였다.
1071년 아르메니아의 만지케르트 싸움에서 셀주크, 투르크군은 비찬틴군을 격파하였다.
셀주크조와 교체된 오스만조는 발칸 반도로 진출 하여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공략, 비잔틴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리하여 말레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이슬람화는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광범한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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